"21세기 대한민국 문학예술가를 만나본다" [문인방목] (제6회)
허용회 작가
나는 왜 문인이 되었나
선천적, 태생적으로 목가적 환경의 정서가 켜켜이 쌓이고 싸여 시와 시어들을 유독 좋아했던 나는 생의 전사로서 배설해 놓은 문장들을 소실시키고 싶지 않아 문단을 통해 자작시를 더 익히고 삭혀 이 세상, 그 누군가를 위한 정서, 희망의 종자로써 남기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문인이 되었다
유년시절부터 목가적, 서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고무신 세대로서 짚신 세대(부모님)와 최첨단 세대(자식)를 아우르면서 삼대(三代)의 중간자로서 생의 번민과 혜안을 모색하던 중 쌓인 내적 스트레스를 문장으로 토악질하며 정신적 배설물들을 종종 비워내곤 했었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진 문장들은 나를 문학의 어귀로 인도했고 문인이 되기를 갈구하는 마음에 종종 “월간 체신 정보지”와 “한겨레신문(봄 따러 가세/2005.3.21.)” 등에 시와 수필을 투고하게 되었는데 드물지 않게 대중 매체에 게재된 적이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G 우체국장 재직(2010년) 시절에 『월간 스토리문학 신인작품상 공모전』에 응모하여 “숯의 노래 외 2편”이 당선됨으로써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 와서 소고해 보니 한때는 눈만 뜨면 시상에 파묻혀 사는 통에 아교같이 찐득찐득한 이물질이 눈 주변을 에워싸는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역사적 사명을 띤 사람처럼 십여 년 동안 각종 문예지 웹사이트를 드나들며 문필가적 방랑생활을 자처했었다. 문득,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나도 한때는 미친 자(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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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인으로서 세상에 이것을 남기고 싶다
지구로 여행 온 나는 “가능한 경험치를 많이 쌓자”라는 생의 전략에 기인하여 생의 전사로서 살아왔다. 이젠, 30여 년 동안 중앙공무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석란산방(石蘭山房)으로 귀촌한 나는 문학, 수석, 유화, 판각, 석 조각, 목공, 분재, 정원 가꾸기 등을 하면서 한국예술인(韓國藝術人;16. 1.20~)으로서 은퇴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향후 나의 문인 생활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치와 늘그막에 점입가경할 『방하착(放下著)』과 『기름기 빠진 담백한 정신』으로 시작(詩作)한 문장들을 민들레 홀씨처럼 이따금씩 쪽빛 창공에 흩뿌릴 것이다. 특히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독자께 『한 줄기의 빛과 달달한 소금』이 될 수 있는 일생일권(一生一卷)의 시선집을 이 세상에 기꺼이 내어 놓고 싶다.
● 허용회(許龍會)
△1962년 출생 △출생지: 전라북도 남원 △본관: 양천(陽川) △출신고교" 전주공고 △출신대학: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등단지" 《스토리문학》 △주요 문단경력: 한국스토리문인협회 이사, 현대시문학 동인 △직업: 전주인후동우체국장 歷任. 행정사 △지식경제부장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 등 수상 △대표저서: 『냄새나는곳에 유혹이 있다』(시집) 『이 가슴에도 물이 오른다』(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