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서울에서 30년간 작은 진료실을 지키며 일했던 의사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13억원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6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장응복(99)씨 얘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자신의 생전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피란길에 올랐다. 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인 병원인 ‘장의원’을 열고 30년간 일했다. 유족들은 “개원할 때만 해도 한남동은 서울 변두리였는데, 그곳에서 아버지는 1991년 은퇴할 때까지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일하셨다”고 전했다.
장씨는 의사로 번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해 재산을 100억원 이상으로 불렸지만 늘 검소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옷도 아내인 김영선(93)씨가 손수 뜨개질한 것을 즐겨 입었다. 대신 재산은 미래 세대를 돕는 일에 쓰기로 했다. 2015년 35억7000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억~50억원가량을 한동대에 기부했다. 한동대 표어 ‘배워서 남 주자’에 감명받아 “벌어서 남 주자”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장씨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가 2015년 기부를 시작하기 직전에야 거액의 재산을 모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113억원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장씨는 그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한동대 학생 250여명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생전 그는 자기 재산을 남에게 알리거나 과시하지 않았고, 조용히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대학에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돈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박하영(27)씨는 “장응복 선생님은 친할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였다”며 “도움 받은 것을 남에게 다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고 했다.
장씨의 남 모를 선행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이어졌다. 한동대에서 “훌륭한 뜻을 알리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살아 있을 때는 기부 사실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사양했다. 강신익 교수가 수차례 설득한 끝에 “사후에는 기부를 알려도 된다”는 허락을 겨우 받아냈고 유족의 동의도 받았다고 한다. 최도성 한동대 총장은 “장응복 기부자님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앞으로 자기가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면서 선행이 대물림된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출처] "벌어서 남 주자" 113억 기부하고 떠난 99세 의사|작성자 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