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들로 구성된 '개벤저스' 멤버들과의 즐거운 한때. 가운데가 우예람 심판.
국회시도의정뉴스 최태문 기자 |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화제다.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진심을 다해 축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밋거리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투지와 열정은 전문 선수 저리 가라할 정도다. 승리하면 아이처럼 환호하고, 패배에 서럽게 눈물짓는 모습에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이처럼 ‘골때녀’가 화제의 중심이 되면서 출연자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뒤에서 돕는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 그중에서도 심판은 자칫 과열될 수 있는 경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골때녀’에 출연하는 심판 중 한 명인 우예람(29) 심판을 ‘KFA 홈페이지’가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경기가 열린 인천 남동아시아드 경기장 인근에서 이뤄졌다. 우 심판은 이날 인천현대제철과 세종스포츠토토 경기에 주심으로 배정돼 경기를 주관했다.
고향이 제주도인 우 심판은 현재 제주에서 활동하는 1급 심판 중 유일한 여성 심판이다. 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3급 심판 자격증을 딴 뒤 이듬해부터 심판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WK리그를 비롯해 각종 국내대회에서 활약할 뿐만 아니라 ‘골때녀’에 출연해 축구의 재미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 심판은 선수 생활을 그만 둔 뒤 가족의 권유로 심판계에 발을 딛게 됐다. 처음 심판을 권유받을 때만 해도 “절대 싫다”며 버텼던 그는 어느새 심판의 매력에 푹 빠져 12년째 ‘그라운드의 포청천’ 역할을 맡고 있다.
‘KFA 홈페이지’와 만난 우 심판은 심판이 된 과정과 심판으로서의 노력과 고충, 그리고 관심을 모으는 ‘골때녀’ 출연기를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털어놓았다.
- 처음 심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면서 축구 선수를 그만 뒀어요. 당시 어머니의 친구가 심판을 하고 계셨는데, 저에게 ‘운동 그만뒀으니 심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죠. 처음엔 ‘절대! 싫다’고 했어요.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선수 생활을 그만 둔 거라 관련한 일은 그만 하고 싶었거든요. 어머니가 ‘자격증만이라도 따라’고 해서 자격증을 취득했고, 어쩌다 보니 벌써 12년째 하고 있네요(웃음).
- 어떤 매력 때문에 심판을 계속하게 되는지.
처음엔 뭣도 모르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려워서 못할 것 같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 왠지 모르게 계속 축구장을 찾게 되고, 가고 싶어졌어요. 축구 선수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요. 잠깐 보고 마는 게 아니라 경기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만나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요. 전국 곳곳을 다녀볼 수 있고, 더 나아가면 다른 나라도 갈 기회도 있죠.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라 생각해요.
선수 때보다 심판이 더 재밌어요(웃음). 선수들과는 운동장에서 뛰는 것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다릅니다. 더 집중하게 되고, 나에 결정에 의해 판정이 달라지는 점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워요.
- 처음 심판으로 배정 받았을 때 기억이 나세요?
공식 배정을 받은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자격증을 따고 이듬해 2월에 열린 제주 칠십리배 초등학교 대회였어요. 그 전에 겨울 전지훈련 기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팀 연습경기에 배정 받았는데 욕을 많이 먹었어요. 처음이라 실수가 많았죠. 지도자들도 제가 처음인 걸 알고 장난으로 항의도 많이 했고요. 솔직히 그때 울 뻔했어요.
- 지금은 베테랑 심판이 돼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어떻게 ‘골때녀’에 출연하게 됐나요?
대한축구협회에서 ‘골때녀’ 경기에 심판 추천을 하려고 하는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 수락을 했어요. 뭔지 잘 모르고 합류했어도 기분은 설렜어요.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고 해서 재밌겠다 생각은 했죠.
- 그동안 ‘골때녀’에 나가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프로그램이 예능이니 다들 재미를 위해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다들 진지하고 생각보다 경기가 엄청 치열해요. 다들 승부욕도 강하고 열정이 대단하더라고요. 출연자분들이 열심히 하니까 심판인 저도 더 집중하게 됐어요.
- 인상 깊은 출연자도 있을 것 같아요.
선수로 출연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강인 선수의 친누나 이정은(국대패밀리) 씨가 먼저 떠오르네요. 진짜 선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축구 실력이 좋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코미디언 조혜련(개벤져스), 가수 신효범, 배우 박선영(이상 불나방) 언니도 기억에 남아요. (* 괄호안은 소속팀). 나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열심히 하세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굉장히 좋아 보였어요. 저에게도 동기부여가 됐어요.
거의 1년째 같이 하다 보니까 지금은 출연자분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줘요. 오랜만에 볼 때는 ‘잘 지냈냐, 보고 싶었다’면서요. 음료나 커피를 챙겨주시기도 해요(웃음).
- ‘골때녀’는 일반적인 축구 경기 규칙이 적용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떤가요?
프로그램 속 규칙이 따로 있어요. 11인제 축구와 풋살 규칙이 기본적으로 적용되지만 해당되지 않는 것도 있죠. 예를 들어 원래 축구에서는 얼굴을 가리려다가 손에 맞으면 핸드볼이에요. 하지만 ‘골때녀’에서는 연예인이 많다 보니,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손으로 막는 행위는 핸드볼로 판정하지 않아요.
- 일반 대회와 달리 판정을 유연하게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프로그램에서 정한 특별 규칙을 제외하면 절대 예능으로 판정하지 않고, 냉정하게 합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심판들이 규정대로 해요. 다만, 핸드볼 특별규칙에 대해서 시청자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긴 해요. 그래도 시청자들이 경기 규칙, 나아가서 축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서 심판으로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집중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집중해서 좋은 판정을 내려야 팀에 피해가 가지 않죠. 좋은 판정을 내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경기 운영도 중요합니다. 선수들이나 지도자들과 대립이 생길 수 있는데 경기 운영까지 잘해야 좋은 심판이라 생각해요.
저는 선수들이 판정에 대해 물어보면 이유를 잘 설명해줍니다. 그래도 선수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만 어느 정도 경기가 과열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과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WK리그 심판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 보람있는 순간도 있었을텐데요.
다른 경기도 마찬가지지만 WK리그도 판정으로 인해 시끄러울 때가 힘들어요. 강한 항의가 오면 저도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봤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때 바로 멘탈을 바로잡지 않으면 경기가 힘들어져요. 다른 것보다 이 점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반대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랑 지도자분들이 ‘수고했다’면서 웃으며 인사를 건네올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정말 사소한 것이지만요(웃음). 그리고 양팀 선수들끼리도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안도가 돼요. 웃으면서 인사한다는 건 경기가 별탈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증거니까요.
- 좋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은 모르는 노력과 고충이 있을 것 같아요.
체력 운동은 당연하고, 공부를 많이 합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플레이 성향을 공부하면 판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고충이라면 집이 제주라 이동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엄청나게 길어요. 심지어 제주에 있는 집과 공항까지 거리도 많이 멀어요(웃음). 하지만 운동장 가는 게 힘들다고 핑계를 댈 수는 없어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서 경기가 많이 취소돼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틈틈이 미용 자격증과 제과기능사 자격증도 땄어요.
- 취득한 자격증은 은퇴 후 미래를 생각하는 것인가요?
아직 정확하게 정한 건 없어요. 작은 사업을 하면서 심판을 계속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사업을 하게 되면 심판 배정을 받더라도 자유롭게 시간을 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 진로를 고민하는 축구선수들과 심판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선수 여러분들은 축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를 접하고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자격증을 따면 더욱 좋겠죠. 물론 심판 자격증도 포함이에요. 심판 자격증을 따놓으면 축구를 그만뒀을 때, 운동장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직업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심판은 처음에 시작할 땐 속상한 일이 많을 수 있어요. 이 단계만 넘어서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매력있는 직업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합니다.
저희 심판들도 판정에 항의하는 감독, 선수들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선수들도 경기 중에 의도하지 않게 실수를 하듯이, 저희도 실수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올바른 판정을 하려고 다들 애쓰고 있으니까, 너무 대립 관계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노력할게요.
[뉴스출처 : 대한축구협회]